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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도로 진화된 생존기계다. 고도라는 것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선택에 의해 갈고 닦인, 효율적인 도구들을 장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눈은 생존을 위해 빛의 파장을 느낀다. 코는 생존을 위해 화학분자를 느낀다. 피부는 생존을 위해 온도와 습도, 통증을 느낀다. 좀 더 복잡하게는 인체 내부 체성기관들은 항상 심박수와 호르몬 등을 피드백하며 적정 상태를 유지한다. 이 모든 감각기관의 목표는 단 하나다. 생존. 감각기관이 수집한 정보는 감정에 영향을 주고 감정도 다시 신체 각 기관에 영향을 준다. 아름다움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 악취에 찌푸리고 자리를 피하는 행동. 흔들다리에서 심박이 올라가자 설레임으로 착각하고 고백을 받아주는 여인의 감정. 생존을 위한 시스템.
인간의 감정과 마음은 왜 있을까? 인류는 아주 유사한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천성이기도, 후천적인 교육이기도 하다. 최신 뇌과학은 감정이 (사실 모든 뇌의 패턴이) 선천과 후천의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학술적인 부분은 제쳐두고, 시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 대부분 아주 유사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치 새가 날개가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 기독교의 Deadly Seven Sins니, 불교와 한의학의 오욕칠정이니 하는 것들이다. 왜 이런 것을 갖고 있는가? 어느 날 신이 심심한 나머지 에덴동산을 만들고 선악과를 줬기 때문인가? 아주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통증은 감각신호이다. 감정이 아니다. 벌레도 통증을 느끼고 생선도 고양이도 인간도 모두 통증을 느낀다. 통증은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이므로 모두 피한다. 벌레도 인간도. 이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점차 감정을 발달시켜왔다. (벌레가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벌레는 감정 대신에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반응속도를 발달시킨 것이다. 진화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통증이라는 감각신호와 결합되면 강력한 패턴이 생긴다. 과거의 불쾌한 경험을 통해 통증을 유발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한번 당했던 아픔을 피하려는 아주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즉각적인 행동이 나온다. 그 결과로 생존에 유리해진다. 통증이 감정으로 기억된다.
False Alarm. 이 신호는 항상 정직하지는 않다. 기억은 끊임없이 왜곡되고 무의식은 우리를 속인다. 생존을 위해서는 일단 조심하는 게 좋다. 숲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면 포식자라고 인식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멀리에서 모래먼지를 일으키는 존재를 적으로 인식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비록 그것이 어린아이일지라도. 걱정과 불안! 일단 걱정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바스락 소리를 듣고 일단 도망간 선조가 살아남은 것이다. 그뿐이다. 걱정과 불안이 우월하기 때문에 진화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걱정과 불안을 많이 느끼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 아닌 것이다. 효율적인 생존기계로서의 반응일 뿐이다. 벌레가 인간의 손짓에 위험을 느끼고 날아가 버리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가짜 신호는 무의식에서 아주 빈번하며 꿈에서 시각적으로 변환된다. 가짜 경험을 만들어낸다. 도구로서의 감정을 이용한 행동연습. 패턴연습. 나는 어제 발목을 다쳤다. 발 뒤를 부딪쳐 멍이 살짝 들었다. 삔 것이 아니라 부딪친, 새로운 유형의 통증이었다. 살짝 부어올랐고 응급조치로 압박을 한 뒤 파스와 자운고를 발라주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뭔가 창피를 당하는 꿈이었다. 아주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수치심은 좌측 다리를 절룩거리는 장애를 가진 나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 시장의 뒷골목에서 발이 불편한 나를 사람들이 비웃는 그런 꿈이었다. 어찌나 강렬한 감정이었는지 나는 꿈에서 깨기까지 했다. 발목이 욱신거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처음 경험한 새로운 통증 신호가 경험되었다. 나의 무의식은 아주 불편했다. 이걸 다시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미래에는 이 통증을 또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 꿈은 좋은 행동연습이다. 통증을 피하는 연습.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을 피하는 연습. 어떻게 앞으로는 육체가 효율적으로 이 통증을 피할까? 감정이다! 감정을 결부시키면 된다! 발목을 저는 사람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이용한다. 발 병신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수치심을 입히면 된다. 발목이 다치는 상황을 감정적으로 피하게 된다. 이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절대 의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므로 덮어놓고 믿게 된다. 나는 나의 무의식을 뿌리부터 의심하는 중이므로 내 마음속에서 무의식이라는 생존기계가 뭘 하는지 알아차렸다. (라고 망상중이다.)
물론 이것이 타고난 의심병에서 출발한 또 다른 망상일 수 있다. 망상이 아님을 증명하기 매우 어려운 분야다. 무의식과 감정에 대한 많은 문헌자료와 인용이 필요할 것이다. 최신 뇌과학을 근거로 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학자보다는 엔지니어다. 실용적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재밌기만 하다면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건 일기장이야!) 감정이 생존기계로서의 인간이 만들어낸 생존도구라는 아이디어는 아주 재미있지 않은가? 또한 나 자신의 가짜 감정들을 없애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것 같다. 나는 나의 가짜 불안, 가짜 두려움, 가짜 욕구들을 없애고 싶다. 설령 진짜 불안일지라도 좀 적당히 괴롭고 싶다. 좀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