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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과 믿음과 죽음
    카테고리 없음 2022. 4. 28. 23:19


    22년 2월, 어느 기업인의 부고를 보았다. 게임산업의 거물로, 1조 원 이상의 재산을 축적한 분이었다. 유명인인 만큼 논란도 있지만 금전적으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기 힘든 사람이었다. 1조 원의 자산을 가진 삶. 100억이 100개 있어야 1조 원. 하루 1억씩 써도 27년을 써야 다 쓸 수 있는 돈이다. 아니 다 쓸 수 없겠다. 하루 이자가 1억 이상이면...

    사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그 죽음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두려움을 느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우울함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포고. 너도 이대로 돈돈돈하며 우울하게 살면 저렇게 너 스스로를 죽일 거라는 속삭임. 그가 죽을 만큼 힘들어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죽을 만큼 힘들기는 쉽지 않다. 우리 마음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절망에 빠져 삶보다 죽음이 낫다고 여겨질 때 자살을 하는 것 같다.

    그는 어떤 절망에 사로잡혀서 죽는 게 낫다고 믿게 되었을까?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충족되자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져서, 삶의 방향을 잃고 원동력을 잃어서였을까?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성공한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뿐이었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을 스스로에게 주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다는 절망에 사로잡혔을까?

    나는 그의 삶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의 절망과 행복을, 그의 가치관을, 그의 결핍을 알지 못한다. 그의 마음은 그의 아내도, 부모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절절히 알아주었다면, 그에게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면 삶을 포기할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으리라. 본인조차 자기 마음을 몰랐을 것이라고 감히 상상한다. 그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존중했다면 삶을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든 자살자들은 세상을 혐오하고 또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죽이고 싶을 만큼!

    그가 믿었던 가치. 그가 세웠던 인생관과 세계관. 또 인간관계에 대한 믿음들. 그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낫다고 믿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규칙을 믿었을 것이다. 자신이 세운 규칙으로 스스로의 삶을 판단했을 것이다. 그 판단은 지금 너의 삶이 무의미하다 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조차 압도하는 무서운 결론. 너는 살 가치가, 살 이유가 없다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 너무나 절망적이고 외로운 그 믿음에 애도를 표한다.

    믿음은 삶의 본능을 뛰어넘는다. 믿음은 기꺼이 죽게 만든다. 자살특공대, 자폭테러도 스스로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에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재난의 현장에서 타인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무릅쓰는 영웅들도 무언가를 믿지 못한다면 불꽃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믿음은 존재를, 실체를 바꿀 힘이 있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실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믿음 앞에서는 어떤 실체도 무의미할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아주 하찮은 것도 세상의 모든 것보다 소중하다고 믿을 수 있다. 돈이 얼마가 있던 간에, 얼마나 많은걸 갖고 있던 간에 스스로를 살 가치가 없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믿는지가 삶을 결정한다. 인생이 고통이라고 믿는가? 반드시 인생이 고통이 될 것이다. 인생이 신비롭다고 믿는가? 인생이 신비로워질 것이다. 믿음은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큰 축복이자 가장 큰 저주이다. 아무거나 믿지 말자. 지금 뭘 믿고 있는지 내 마음의 뿌리부터 건강하게 의심해야 한다. 일단 쓸데없는 믿음 하나는 확실히 내려놓았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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