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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링으로부터의 자유
    카테고리 없음 2022. 5. 7. 06:58






    우리는 힐링을 좋아한다. 하루하루는 고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소확행을 찾는다. 술자리, 게임, 드라마, 영화, 음악, 책, 웹서핑, 스포츠, 클럽, 여행, 심리상담...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굉음을 내며 강변북로에서 폭주를 한다거나 (제발 좀 더 서울을 벗어나서 해줬으면...) 마약을 탐닉한다거나 성매매를 한다거나. 법이 허용하느냐 도덕이 허용하느냐의 범위일 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힐링산업의 범주 안에 든다.

    힐링산업. 힐링은 거대 산업이다. 인간은 힐링이 필요하고 필요가 있는 곳에는 공급이 있다. 자본주의와 만나 현대의 힐링산업은 엄청난 규모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유혹한다. 유혹하여 판매한다. 그것이 자본의 목적이니까. 대박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같은 힐링을 공유한다. 여행사 광고의 그 행복해보이는 모습들. 웅장한 BGM과 함께 지상 낙원이 펼쳐진다. 진정한 나를 찾으세요! 새로운 인연을 찾으세요!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 도피하세요!

    딱 꼬집을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왔을 수 있다. 지금 여행이 도피라는거야? 드라마가 도피라는거야? 술자리 가고 음악듣는게 힐링산업의 노예라는 말이야? 그 말이 맞다. 맞는 말이라 불편하다. 전체 사회와 문화가 공유하는, 대다수가 빠져 있는 망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니까. 불편한 걸 넘어서 이단이 주는 공포감이 있다. 사람은 진화적으로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을 두려워하도록 세팅되어있다. 집단에서 벗어난 사람을 배척하도록 진화해왔다. 힐링산업은 똥물 안에서 쳇바퀴만 도는 인간에게 잠시 휴식을 주는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의 산소만 담긴 산소통. 주변의 모~~~~두가 호흡기를 달고 사는데, 똥물에서 벗어나 숨 편하게 쉬겠다는 인간이 있다? 불편하지.

    불편러가 된 김에 저주를 좀 더 하자. 본인이 처한 현실에서 불만이 있다면 그 어떤 힐링산업으로 도피하던 금방 불만족스러워질 것이다. 매일 밤 술을 마시던, 마약을 하던, 섹스를 하던 매일 매일 불행할 것이다. 음악과 영화라는 자기 딴에 고상한 문화로 도피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정신과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헬스클럽에서 쇠질을 하는 시도를 한다 해도 그것이 근본치료가 아니라 힐링이라면 역시 다시 지옥이 될 것이다.

    내가 만난 상담사분은 첫 상담에서 몇마디 나누고는 면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 "YC씨는 이렇게 살다가는 마약이나 술이나 뭐든간에 중독되어서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할 겁니다." 나는 상담사분께 내가 술을 얼마나 마신다고 말하지 않았다. (많이 마시지도 않음. 아니 못마신다. 다행히도.) 마약을 하지도 않거니와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진짜 안함.) 유튜브는 중독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치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얘기하지 않았다. (상담까지 하러 가서도 거짓말 하는게 인간이다.) 그럼 나의 어떤 부분을 보고 저런 충격적인 말을 했을까? 인생을 통째로 저주하는 듯한 말을?

    내가 상담을 요청했던 부분은 연애와 결혼문제였고, 나아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상담사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어 보였다. 나에게 일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왜 쉬냐고 물었다. 한의원을 개원해서 2년간 원장질을 했더니 죽을것 같아서 쉬고 있다고 했다. 일이 왜 힘들었냐고 물었다. 진상환자가 많고 돈 벌기가 힘든데, 돈 벌어봐야 쓸데도 없고 허무해서 돈지랄로 스포츠카도 샀지만 그래도 한의원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현실이 지옥이고 인생이 고통이면 무엇으로 도피하든 언 발에 오줌누는 꼴이다. 당장 꽁꽁 언 발에 미온수를 뿌리면 당장 살짝 녹겠지만 이내 더 심하게 얼어붙는게 당연하다. 상담사는 온 몸에 미지근한 물을 붓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점차 더 많은 물을 몸에 붓는다. 처음에는 음악, 드라마였다가 유튜브가 되고 술이 되고 마약이 되는 과정을 상담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인생과 실제 현실이 다를수록,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할수록 중독은 강해진다. 힐링산업에 충실한 상담사는 절대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만난 상담사는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게 너무 고맙다.

    힐링은 좋다. 힐링 자체는 나쁜게 아니다. 여행 자체는 너무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경외하는 감동이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기회도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옥같은 현실에서의 도피라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여행지는 도피처도 될 수 없고 탈출구도 될 수 없다. 지긋지긋한 일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걸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문제이고, 그걸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기합리화와 남탓으로 무장한 거짓말이 문제인 것이다. 여행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쁘게 써먹는 내가 나쁜 것이다. 여행이 마음먹기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처럼 일상도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 진부한 표현이 아니다. 나의 온 존재를 걸고 외친다.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마음먹기' 에 달렸다. 원하는 인생을 살면 여행 따위로, 드라마 따위의 힐링으로 도피할 필요가 없다.

    유명 마케터이자 작가인 세스 고딘은 인간심리의 달인이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마케터가 될 수 없다. 그의 수많은 어록 중 하나를 옮겨 본다.
    'Instead of wondering when your next vacation is, maybe you should set up a life you don't need to escape from.'
    다음에 어디로 여행을 갈지 고민하기보다 도피할 필요 없는 삶을 사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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