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기 전에는 책상부터 정리한다. 핸드폰은 그냥 꺼내서 보면서 책은 뭔가 각잡고 보려고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면 되는데 뭔가 대단한 걸 적으려고, 잘 보이려고, 멋진 결과를 내려고 애쓴다. 그러니 글이 안써지지. 그러니 책을 펼쳐 공부를 하는게 대단히 어렵지.
그냥 하면 되는데 못 하는 마음의 이유는 다양하다. 깊이 들여다보면 망상을 꼭 쥐고 못 놓고 있다. 가장 깊은 곳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 불신이 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잘난 사람이 아니니까. 부끄러워서, 내가 모자라서 시작을 못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다.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그럴싸한 결과물. 인정받는 직업. 경제적인 성공. 이런 결과를 원하니 시작하기 전부터 간보고 각보고 이리재고 저리재고 조언을 구하러 다닌다. 하하!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구하러 다닌다!! 조언을 구하는 마음도 뭔지 잘 알고 있다. 책임을 지기 싫은거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예민한 것도 한몫한다. 누가 나를 못난이로 볼까봐 전전긍긍한다. 나를 판단하는게 소름끼치도록 두렵다. 왜? 나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고 있으니까. 어이구 저 병신 쯧쯧 하면서 욕하고 있으니까. 남도 나를 그렇게 욕할게 무서울 수밖에. 내가 남을 업신여기고 남의 일을 비하하고 있으니까 내가 얕보일까봐 무서울 수밖에. 아주 이기적인, 자기밖에 모르는 생각이다. Self-Centerd Mind. Self-Oriented Mind.
대학을 진학할때도, 직장을 구할때도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 순위별로 성적에 맞춰 간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가는 게 아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가는 것이다. 본인의 전공도 부모가 살아온 편견에 따라 뭐가 좋은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도 학점과 출신학교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을 간다. 이게 스스로 원하는 삶인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인가? 조언 받는거 좋다 이거야. 그 조언을 한 사람은 실제로 해본 사람인가? 한의대 진학을 고민한다고 치자. 한의사가 아닌 사람들한테 물어볼 게 뭐가 있는가? 한의사로 살아보지도 않은 부모나 선생에게 대체 뭘 바라고 물어보며, 그들은 뭘 안다고 지껄이는가?
자,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나에게 고3학생이 찾아왔다. 한의사로 사는게 어떠냐고. 나는 그에게 답을 줄 수 없다. 되라고도 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한의사로 살았던 나의 경험을 얘기해주는 것 뿐이다. 나는 그 학생의 성향을, 믿음을, 가치관을, 고정관념을, 천성을 모르기에 답을 해줄수 없다. 정답이 없는 문제다.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조차 해줄 수 없는 답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내린다고? 니가 뭘 아냐?
해보는 수밖에 없다. 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세상의 모든 일을 해본뒤에 결정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작게작게라도 경험해보고 맛이라도 보고 시도라도 해보고 얘기해야지. 시작도 하기 전에 안될거라고 체념하면 인생이 항상 그자리 아닌가. 결과를 책임지기 싫어서, 남의 눈이 무서워서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미리 좌절하면 항상 그모양 그꼴 아닌가. 남의 인생을 사는 것 아닌가.
며칠 전이었다. 오후 8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샐러드가 먹고 싶어 자주 가던 샐러드가게를 확인하니 영업시간이 8시까지였다. 여자친구는 됐다고 했지만 나는 가게에 전화를 했다. 사장님은 퇴근 전이었고 나는 나의 상황을 설명한 뒤 샐러드를 먹을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배민 배달은 종료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콜을 부를 수 있다고 했고, 개인통장으로 배달비까지 입금해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샐러드를 먹었다. 만약 영업시간이 지났으니 지레 포기했다면 먹지 못했을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블로그 글도 써보니 알겠다. 멋진 글을 처음부터 쓸 필요가 없다. 일단 쓰는게 핵심이다. 수정이 필요하면 다시 읽고 수정하면 된다. 더 좋은 생각이 나면 덧붙이거나 새로운 글을 쓰면 된다. 뭐가 두려워서 글을 안 쓸까? 작가 같은 멋진 글이 쨔쟌 나올 때까지 글을 안쓸건가? 그럼 언제 그런 글을 쓰게 되나? 다시 태어나서?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정주영 회장은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난색을 표하는 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