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준비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상가를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을 몇 군데 컨택했고, 그 부동산이 또 부동산을 연결해준다. 음식점이었던 자리를 한의원으로 바꾸기 위해 건축물 용도변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보건소, 구청, 건축사사무소, 상가 관리인단, 변호사... 와 연락하여 관련 법령과 내규를 알아본다.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며 임대인을 만나고 인테리어 업자를 몇 명 소개받는다. 현재 세입자인 음식점 사장도 만나 권리금을 주고 철거 일정을 조율한다.
이제 시작의 시작단계인데도 벌써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총 대화 시간은 50시간 이상으로 생각된다. 길바닥에 뿌린 시간만 100시간 이상이다. (이제 시작인데) 오고 간 계약금과 이런저런 비용만도 총 천만 원이 넘어갔다. 총 개원비용은 2억 이내가 될 듯하고, 나의 맨아워는 최소 300시간 이상이 소요될 예정이다. (인건비만 얼마야? 난 시급 10만 원 이상이라구!) 인테리어 업체 10곳 이상 만나고 선정할 예정이고, 공사가 들어가면 수십 명의 인부를 만나게 된다. 의료기기, 제약회사, 정수기 에어컨 등 설비업체, 가구업체, 목수, 은행, 신보, 세무사, 법무사, 보건소(이게 제일 두렵다. 담당자 전화받는 목소리부터 벌써... 하...), 구청, 건축사, 임대인, 주변 상인 및 원장들, 면접 봐야 할 직원들.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그들과 논의할 일도 많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반.
이들 모두는 자신의 생계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익관계다. 개중에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고, 말만 많은 사람도 있고, 침착하고 양심적인 사람도 있다. 그 모두를 내가 꿰뚫어 볼 수는 없다. 사기꾼을 모두 걸러내려는 마음은 나의 욕심이고 오만이다. 또 그들과의 거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전혀 알 수 없다. 정말 많이 알아보고 준비해도, 인테리어 계약에서 호구를 당하지 않을 가능성은 10% 미만으로 생각된다. (이것도 약간 오만한 계산임.) 최악의 경우에는 구청과 보건소에서 상가 용도변경이 허가되지 않아 한의원 개설이 불가할 수도 있다. (특약 넣음.) 같은 건물의 의원, 한의원, 약국이 상가 내규를 걸고넘어지면서 소송을 할 수도 있다. (1%의 패소 가능성이 있다 해도 민사는 질질 끌면 된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감히 짐작하건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업자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걱정돼서 잠도 안 올걸?
그러나 두려움은 내 마음에만 있는 것이다. 실체가 전혀 없는 망상이다.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캐치프레이즈로 다짐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해보기 전에는 정말 어떻게 될지 정말 정말 모른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미리 짐작하고 살았다. 삶에서 중요한 건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아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오만하지도 않게 불안하지도 않게 그냥 해 보는 것이다. 미리 벌벌 떨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무대책으로 될 대로 되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고 있다. 결과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이 모든 과정이 즐겁다. 눈탱이 치려는 부동산 업자, 인테리어 업자들이 귀엽기만 하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들의 양심과 행동까지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겠나? 나는 나의 양심과 나의 비전에 따라 나의 행동을 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나부터 똑바로 한다. 아니 나만이라도. 개원 준비가 대작 RPG 게임하는 기분이다. 여행 계획 짜는 마음이다. 앞으로가 설렌다. 여행지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행 안 갈 거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