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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은 망상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2. 5. 12. 13:24




    오늘 제목도 역시 어그로다. 하지만 사실이다. 수학은 인류의 아름다운 망상이다. 아주 유용하고 강력한, 어찌 보면 불 보다도 더 대단한 인류의 도구이다. 수학은 물리, 생물, 화학, 천문학과 같은 기초학문부터 경제, 정치, 의학, 공학 등 모든 응용과학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실존하는 것이든 아니든, 관찰하고 분석하고 측정하여 기록하기 위해 수학이 사용된다. 수학은 인류에게 있어서 눈이자 귀이자 손발인 것이다.

    하지만 수학은 실존하지 않는다. 모두 약속에서 시작한다. 1에 대해 정의하고 2에 대해 정의한다. 무리수, 자연수, 허수, 실수에 대해 정의한다. 이 정의는 모두 약속이다. 사칙연산도 약속이다. 덧셈 뺄셈부터 수천년간 쌓아온 약속. 하나하나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0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최근에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1, 10, 100을 구분하는 단위로서의 0은 기원전 2천년전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되었다. 이때의 0은 단위를 나타낼 뿐 '없음' 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현재 당연한 듯이 알고 있는 수로서의 0은 7~8세기경 인도에서 발명되었다. 발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발명이 맞다. 없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0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없는 것이 어떻게 '무언가' 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없는 건 그냥 없는 것이다. 없다는 개념은 당연히 그 당시에도 있었지만 그것을 숫자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0을 처음 발명한 인도인들은 0으로 사칙연산을 시작했다. 3+0=3. 4-0=4. 0-1=??? 여기서 음수가 발명되었다. 역시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초기의 0은 사칙연산에 혼동을 주기도 했다. 0을 곱하고 나누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0을 0으로 나누면 0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아주 근대에 와서야 0으로 나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정의 내렸다. (머리 아프게도 수학적으로는 세세한 정의가 있다. 무한소를 제외한 0을 초과한 수 나누기 0은 항상 무한대이고, 0 나누기 0은 일반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

    수학은 정의와 약속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아무런 실체가 없다. 인류가 수천년간 공유해온 망상이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상상도 못 하는 방식으로 수를 정의하고 연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진법이나 십진법, 3차원이나 4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은 수학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는 자외선과 적외선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빛의 파장은 존재한다. 다른 필터를 끼면, 가시광선의 형태로 변환하면 '볼 수' 있다. 수학이라는 관념 안에서는 수학 외의 세상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도구, 어떤 필터, 어떤 관념도 실존을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 관점의 한계가 있다. 아주 유용하지만, 실체는 아니다. 그저 도구일 뿐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망상인 것이다. 수학은 아주 작은 예일 뿐이다. 인간이 굳게 믿고 있는 모든 관념들이 사실 모두 망상이다. 인간관계, 윤리, 도덕, 경제, 의학, 과학, 철학... 그 모든 것이 망상이다. 자아를 이루고 있는 모든 믿음들이 망상이다. 망상 속에서는 그것이 절대적 진리라고 믿는다. 그게 깨지기 전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망상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조차 없다. 모두가 수학을 진리라고 믿는 것처럼!

    수천만명중 한 명, 수백년에 한 명씩 개인의 능력으로 인류의 공유망상을 깨부수는 사람이 등장한다. 콜럼버스가 그랬고, 갈릴레이가 그랬고, 아인슈타인이 그랬고, 칼 마르크스가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다. 그들의 선악과 시비는 논외로 하고, 이 영웅들의 공통점은 기존 관념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당대 공유되는 망상에 도전한 그들은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다. 자신의 논리와 설득력으로, 카리스마로 그 망상을 깨트리고 추종자를 얻자 역사에 남는 영웅, 범죄자, 존경받는 과학자가 된 것이다.

    나는 이런 거창한 비전으로 나의 망상을 현실에 던져 부서지고 깨질 생각은 없다. 다만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존인지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까지는 정말 아는 것이고 어디부터는 모르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메타인지가 삶을 충실하고 행복하게 한다고 오늘도 스스로 '망상' 한다. 그 망상을, 믿음을 조금씩 행동으로 옮긴다. 조심스럽지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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