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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찬을 받은 고래는 행복할까
    카테고리 없음 2022. 5. 13. 08:34





    20개월 된 딸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딸이 산책을 아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자기 두발로 산책을 하는 것이라고. 부모 입장에서는 유모차를 타는 것이 월등히 편하다고 했다. 나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니 잠자코 들었다. 친구는 이어서 이렇게 얘기했다. “유모차를 타고 나가면 우리 딸 착하다고 엄청 칭찬해 줘!” 나는 그 말을 듣고 오지랖 넓게도 그런 칭찬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버렸다. 친구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지금도 없다. 애도 없는 놈이 뭘 아냐고 한다면 할 말도 없다. 변명 같은 마음으로 글을 써 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여기서의 고래는 미국 씨월드의 범고래다. 훈련사와 범고래의 관계를 얘기하는 건데, 일단 사육사와 동물이라는 뚜렷한 상하관계가 있다. 범고래에게 춤추라고 명령한다. 사육사가 고래를 조종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훈련이 잘 되어 사육사와 고래 관계가 좋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은 2010년 범고래가 사육사를 잡아먹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70건 이상의 범고래 공격을 받았다는 사육사들의 폭로와 씨월드측의 은폐도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범고래는 시키는 춤을 추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걸 칭찬으로, 먹이로 그 삶을 조종하면 문제가 생긴다. (범고래는 상어보다도 상위 포식자인, 명실상부한 바다의 왕자다!)

    처벌도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칭찬이 뭐가 문제냐? 칭찬 자체는 문제가 없다. 칭찬을 잘못 사용하는 마음에 문제가 있다. 고래를 춤추게 하려는 의도에 문제가 있다. 부모가 믿고 있는 어떤 관념을 주입하려는 의도. 원하는 길로 가게 하려는 조종심. 그것이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할 지라도 아이의 마음에는 두려움을 만든다. 처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을 때 결과로써 가해지는 것이고, 칭찬은 해야 할 것을 했을 때 결과로써 주어지는 것이다. 수레를 미느냐 당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아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가 가고 싶은 곳으로 수레를 끌고 간다.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건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칭찬이 무의식적인 우열관계, 상하관계를 만든다거나 칭찬받지 못한 부분에 대한 열등감을 심어준다거나 하는 부분은 사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칭찬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먼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준다. ‘칭찬 받으니 너무 좋다. 그런데 이걸 해야만 엄마는 나를 칭찬해 준다. 이걸 다음에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부담과 두려움이 생긴 아이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칭찬받지 못하거나 잘 못했다고 혼나느니 그 행동 근처에도 가지 않는 선택을 한다. (이건 나만의 망상이 아니라 수많은 심리실험에서 증명된 망상이다. 평가 불안이라고 한다.)

    행동이 약화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행동에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가 있는데, 결과에 대한 칭찬은 외적 동기이다. 외부로부터의 보상이다. 강렬한 외적 동기가 있으면 내적 동기는 점차 희미해진다. 합성 호르몬을 주입하면 신체가 스스로 호르몬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게다가 반복적인 보상에 대한 만족도는 한 점으로 수렴한다. 한계효용의 법칙. 같은 사탕을 계속 주면 질린다. 아무리 칭찬을 해줘도 역치가 높아지면서 점차 흥미를 잃는다.

    결과에 대해 칭찬을 받고 그 칭찬에 집착하면 결과중심적인 인간이 된다. 과정이야 어찌 되든 결과를 내서 칭찬을 받고 싶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 결과는 자신의 노력 외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불안해한다. 불법과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라도 결과에 집착한다. 심지어 칭찬 때문에 아이는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혼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마음과 칭찬받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마음은 완전히 똑같다. 칭찬이 육아에서 가장 나쁘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어야 한다. 모든 부모가 이 진리를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오해하거나 실천하지 못한다. 무 조건. 사랑에 조건이 없어야 한다. 잘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못했지만 억지로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 욕심과 의도로 (보통 선한 의도이지만) 조종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아주 어렵겠지만 (진짜 @@게 어렵겠지만) 아는 데서부터 시작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칭찬을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해 칭찬하고, 칭찬보다는 격려를, 감사를 표현하는게 좋다고 한다. 해당 행동을 한 마음에 대해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라는 것이다. 집안 청소를 한 아이를 칭찬할 때는 "집이 깨끗해져서 너무 좋다. 우리 아들 착하다." 라고 하기보다는 "청소를 도와줘서 고마워. 엄마아빠를 도우려는 마음이 착하다." 라고 하라는 거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디까지가 결과에 대한 칭찬이고 어디부터가 과정에 대한 칭찬인지 자주 묻는다. 이것도 결과에 대한 칭찬이야?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어렵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말만을 조심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다르게 먹으면 말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칭찬을 이용해서 타인을 조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칭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내려놓으면 존재 자체에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 일단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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