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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카테고리 없음 2022. 5. 15. 07:43
가끔 불안할 때가 있다. 불안은 두려움의 길 잃은 버전이다. 두려움은 대상이 있다. 높은 곳이 무섭고, 호랑이가 무섭고, 선생님의 회초리가 무섭다. 두려움은 행동의 동기가 되고 삶의 동기가 된다. 두려움으로 살게 되면 그 대상이 없어져도 계속해서 불안을 느낀다. 뭐가 쫓아오지 않는데도 계속 쫓기는 기분이 든다. 불안한 마음은 이유를 찾아 헤멘다. 배가 아프면 왜 아픈지 알기 전까지는 암일지도 모르니 불안하다. 왜 아픈지 알게 되면 해결책이 있어 '보이고' 불안이 조금 가신다. 두려움보다 불안이 더 고통스럽다. 불안하느니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을 스스로 만든다. 아! 이것 때문에 불안했구나! 이것만 해결하면 되겠구나! 빌어먹을 해결책을 찾은 무의식은 끊임없이 새로운 두려움의 대상을 찾아 헤맨다. 똥물을 나오지 못하는 인간심리.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지만 불안은 뼈 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느새 코 밑까지 불안이 차 올라 있다. 불안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어쩔 수 있나. 의식적으로 불안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거나 불안을 직시하고 밸브를 돌려 불안을 빼 줘야 한다.
https://youtu.be/u5CVsCnxyXgRadiohead 의 No surprises. 나의 우울한 감성에도 잘 맞고 불안이 차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을 시각화한것 같아 좋아하는 뮤비임.
요새 가장 불안한 게 뭐냐? 개원과 결혼준비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은 뭐냐?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을까봐 두렵다. 다른 사람이 내 욕심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까봐 두렵다. 개원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이용당할까봐 두렵다. 개원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구인이다. 하루 10시간씩 한달 230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직원을 뽑아야 한다. 그 직원은 원장보다도 먼저 환자와 접촉하고 마지막 인사까지 맡는다. 그녀가 깽판을 치면 내 생존이 위협받을것 같아서 두렵다. 더 욕심을 내자면 나처럼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써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 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렵다.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이 불안과 두려움이 과연 좋은 사람을 구하면 사라질까? 하나를 해결하면 또 새로운 두려움을 만들어낼게 뻔하다. 좋은 사람을 구해놓고 어떻게든 안 좋은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을 직시하지 않는 만큼, 인정하지 않는 만큼 그 직원 탓을 한다. 직원만 탓하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탓하고 가족과 아내와 아이들 탓을 한다. 내가 불안하고 괴로운건 너 때문이라고.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이런 사람들 곁에 있어서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거라고. 아하! 이것 때문에 불안하구나! 나는 잘못 없어. 너 때문이야.
좋은 사람 소개시켜줄 필요 없다. 좋은 사람을 소개받고 싶은 마음은 남을 이용하려는 마음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아무 소용 없다. 하느님을 데려다 앉혀놔도 나는 또 불안할 게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된 뒤에는 좋지 않은 사람도 좋게 볼 것이고(좋고 나쁘고는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니 좋게 보면 좋은 사람이 된다.), 그 사람도 마음 깊은 곳의 선함으로 나를 대할 것이다. 모든 고통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좋은 사람 구할 필요 없다. 적어도 좋은 사람을 못 구할까봐 미리 불안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