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증상이다. 불안을 만들어내는 원인심리, 욕구, 가치관, 트라우마로부터 발현된 증상. 원인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배가 아플 때, 그 원인은 위암일수도 소화불량일수도 있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되어야 근본치료를 할 수 있다. 증상에 대한 처치는 대증요법이라고 한다. 소화불량으로 배가 아플 때 진통제를 먹을 것인가, 소화제를 먹을 것인가? 아님 나아가 소화불량을 야기하는 불안장애를 근본치료할 수도 있다. 항불안제, 수면제는 불안이라는 증상에 대한 대증치료다. 원인치료가 아니다. 과감한 비유를 하자면 엔진 경고등을 테이프로 가리는 행동이다. 엔진 경고등이 보기 싫고 수리비가 두려워도 카센터를 찾는 게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불안을 느끼면 신체적, 정신적 반응이 나타난다. 반응은 불안이라는 증상에 대한 이차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배가 아프면 그에 대한 반응으로 화장실을 가는 것 처럼, 불안을 느끼면 호흡이 가빠지고 목과 어깨 근육이 긴장된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옆사람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신체적 반응과 동반되는 불안에 대한 정신적 반응은 방어기제다. 프로이트 씨의 망상에 따르면 억압, 억제, 동일시, 전이, 공감, 합일화, 합리화, 전치.... 등이 있다고 한다. (매우 많음.) 반응은 불안과 거의 동시에 일어나며 반응이 오히려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불안할 일이 없는데도 불안이 올라온다. 불안을 자주 느꼈던 상황에서 습관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나의 경우 관공서에서 잡무를 여럿 처리하고 있으면 불안하다. 동시에 많은 잡무를 처리해야 할 때 불안하다. 쫒기는 기분이 든다. 순조롭게 잘 처리하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불안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첫 걸음은 반응과 불안의 분리이다.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불안이 느껴지자 마자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불안하자마자 반응이 나타난다.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하는 철수의 예를 보자. 철수는 알코올 중독자다. 매일 술을 마신다.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래도 술 먹고 실수는 하지 않아' '마약을 하는 영희보다는 나아' 철수의 자기 합리화는 비난을 받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그리고 자기가 실제로 중독자라는 것을 직면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즉시 합리화를 통해 자아를 보호한다. 이 반응과 불안(두려움)을 분리하고 깨닫는 것이 불안치료의 첫 걸음이다.
그 다음 단계로는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심리, 욕구를 알아차려야 한다. 불안은 증상으로서의 결과이므로 근본 치료를 위해서는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불안이 야기되는지를 깨닫는 시도가 필요하다. 심리상담이 이 원인심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상담 뿐 아니라 스스로도 할 수 있다. 메타인지를 통해 감정일기를 적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요가, 명상, 그림치료 등등의 목적은 결국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찾는 것이다. 철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하다. 철수는 감정일기를 적기로 한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한데, 왜 불안할까에 대해서. 현실이 너무 불만족스러워서 취해서 잊고 싶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이유는 뭘까. 철수는 뭘 원하기에 현실이 불만일까. 철수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 스스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불만스럽고, 그에 따라 불안을 느낀다...
Last but not Least, Just do it. 불안은 욕구로부터 출발한다. 그 욕구는 불만족인 경우가 많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 인체의 모든 증상, 감정에는 목적이 있다. 행동하여 삶을 바꾸는 것이다. 불만족을 개선하는 것이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는 데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빠른 반응, 행동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숲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 태평하게 자던 선조들은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못했다. 불안은 행동을 추동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불안이 지속되는게 당연하다. 불안 치료에 있어서 의미없는 불안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은 중요하다. 의미있는, 실체가 있는 불안을 직면하여 조금씩이라도 행동하고 해결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원하는 삶의 지점이 비현실적이라면 욕심을 버려야 하지만, 어느정도는 내 삶을 끌어올리는 행동이 사실 더 의미있고 충만한 해결책이 된다. 원하는 삶과 실제 삶의 일치를 통한 불안해소.
감정일기에는 불안을 포함한 수많은 감정을 적는다. 감정을 일으키는 욕구를 적고, 분열된 자아들을 적는다. 그 자아들이 일으키는 행동에 대해서 적는다. 감정에 의한 신체반응, 정신반응을 적는다. 반응은 아주 즉각적이고 서로 뒤엉켜 있다. 감정이 올라오면 일단 멈춘다. 심호흡을 하고 단 30초라도 자신을 3인칭으로, 버드뷰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의 방어기제들을 깨닫고 분석한다. 욕구-감정-행동을 명확히 분리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자아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속이려 든다.
감정일기는 아주 안전한 심리 치료다. 보다 효과적이면서 위험한 치료는 개인상담, 집단상담이 있다. 집단상담이 개인상담보다 더 강력하고 더 고통스럽다. 나는 집단상담의 문턱에서 도망쳐 마음일기를 적고 있다.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잡무를 연속해서 처리할 때 불안하다. 뭐 하나라도 삐끗해서 처리가 지연될까봐. 순조롭지 못할까봐. 누군가에게 거절당할까봐서. 창구의 공무원이 인상을 찌푸릴까봐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쫒기면서 관공서를 갔었기 때문에 관공서만 가면 불안하다.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깨가 굳는다. 불안과 인정욕구와 트라우마와 반응을 구분하고 직면하면 정말 보잘것 없는 이유들이다. 불안할 필요가 없다. 정말 불안해 마땅한 건 일단 한다. 결과가 불안하지만 일단 하면 불안이 가라앉는다. 이렇게 조금씩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