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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려움에 대해 쓴다. 두려움, 공포, 불안. 나를 지배하고 있는(있던) 감정들. 수많은 감정 중에도 유독 불안과 두려움을 자주 느낀다.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게 어디서 왔을까. 혹시 이것이 삶 그 자체인가? 두려워서 도망치는 이 느낌이 바로 삶인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걸까? 고통, 불행, 가난, 수치심,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중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러닝을 나서거나 헬스장을 가는 건 힘든 일이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가지 뿐이지만, 하지 않을 이유는 수십가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운동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아주 가볍다. 성취감과 함께 가벼운 깨달음이 있다. 별 거 아니었잖아? 실제 직면해보면 별 것 아닌 일에 벌벌 떨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머리를 비우고 해보면 된다. (그렇다고 '절벽에서 떨어져 보기' 같은걸 해보면 곤란함.) 두려움으로부터의 도피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을 직면해보면 사실 별것 없다. 도망치고 있던 그 무서운 두려움과 불안의 대부분이 실체가 없다. 파생된 것들이다. 욕심으로부터, 기대로부터 만들어진 두려움이다.
잘 살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따뜻한 침대에서 단 것을 먹으며 쾌락을 즐기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를 영원토록 보살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며 영생을 누리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따뜻한 침대에서 단 것을 먹다 보면 점차 건강이 나빠질 것이며, 나를 보살펴만 주는 사람은 없다.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영생은 커녕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공포! 보잘것 없는 날벌레부터 개, 고양이, 원숭이, 인간까지 모든 생명체의 근원적인 두려움. 삶을 추동하는, 공포스러운 죽음으로부터의 도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살고 싶다는 소망에서 나온다. 모든 두려움의 뿌리에는 기대가 있다.
나는 정말이지 많은 것을 기대하고 살았다. 운전 중에는 신호가 항상 파란불이길 바랬으며 도로가 막히지 않길 바랬다. 원빈처럼 잘생기기를 바랬고 아인슈타인처럼 똑똑하기를 바랬고 빌게이츠처럼 돈이 많기를 바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활력이 넘치기를 바랬고 환자가 적지도 많지도 않게 또 진상이지 않기를 바랬다. 여자친구를 원할 때는 곁에 있어주기를 바랬고 내가 원치 않을때는 집에 가기를 바랬다. 부모도 친구도 연인도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랬다. 그 수많은 이기적인 기대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혐오했고 또 슬펐고 또 두려웠다. 수많은 기대와 짧은 충족, 새로운 기대와 두려움의 사이클 속에서 지친 나는 죽음을 느꼈다. 이렇게 쳇바퀴만 돌다 죽을 뿐이라는 허무와 맞닥뜨렸다. 내가 붙잡고 있던 기대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아주 고통스럽게 하나씩.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살고 싶다. 삶을 지속하고 싶다. 먹고 자고 싸고 싶다. 생명을 유지하고 싶다. 죽기 싫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기대에서 온다. 생존이 보장되면 조금씩 욕심을 낸다. 좋은 옷을 입고 싶다. 좋은 침대에서 자고 싶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그 욕심이,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차가 막히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운전하기가 힘들다. 나를 멋진 사람, 유쾌한 사람으로 봐주길 원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다. 편하게 돈을 벌고 싶기 때문에 일하기가 싫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결혼생활이 힘들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육아가 두렵다.
어제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부모님 만이 아니라 할머니, 삼촌, 이모 가족까지 10명을 동시에 만났다. 5년을 사귄 여자친구지만 가족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가장 마음 편한 사람은 나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보잘것 없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기에 어떤 누구 앞에서도 두렵지 않다. 두려움의 패턴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내가 그들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맘대로 굴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주 예의바르고 겸손했고 유쾌했다. (여자친구가 인정함.) 나는 그 자리가 즐거워서 다섯시간이고 여섯시간이고 있을 요량이었지만 나를 배려해주신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두시간만에 여자친구와 나왔고 조금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쓸데없는 기대를 내려놓으면 나도 편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편하다. 모두가 자유롭다. 욕심을 내려놓은 만큼 두렵지 않다. 하루하루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