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공하기를 무서워했다. 정확히는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평가받기 두려워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나온 결과가 누군가의 비아냥을 살까봐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열심히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결과를 두려워했고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끝을 보지 못했던 거다. 결과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서 나도 모르게 성공까지 두려워하게 되었다. 크게 성공하는 건 큰 책임이 따르고 힘들테니 적당히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작게 조용히 성공하려고. 또 실패자는 되기 싫으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의 초라한 에고를 보호하기 위해. 작고 여리고 소중한 나의 에고가 상처받기 싫으니 타인의 판단을 무서워한다. 어떤 멋진 결과물일지라도 타인은 나를 쉽게 판단한다. 대통령도, 이재용도, 일론 머스크도 비웃으며 판단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나 스스로도 그러고 있으니, 내 보잘것없는 결과물에 대한 타인의 판단이 두려운게 당연하다.
그 판단이 두려워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하나를 진득하니 하면 어떤 결과에 도달하니까, 그 결과에 대한 평가가 두려워서 무의식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추동한다. (물론 이런 두려움만으로 시도하는건 아니다. 호기심, 성장의지 등의 긍정감정도 뒤섞여 있음.) 새로운 시도를 하면 발전적이어 보이고 결과에 대한 변명거리도 생긴다.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를 얕게 얕게 습득하고 아는척을 한다. 깊이있는 질문과 평가가 올것 같으면 도망간다. 나는 그렇게 해서 주변인들에게서, 특히 나의 수퍼에고에게서 내려지는 평가를 회피했다. 실패자로 확정되는게 무서운 만년 유망주. 끝까지 가면 내 밑천이 드러날까봐 얕게 얕게 벌려놓기만 하고 결과는 온갖 핑계로 미룬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더 할수있는데 안(못)하는거야. 결과를 직면하지 않는 비겁함.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유를 좋아한다. 소위 마음대로 살고 싶어한다. 책임과 구속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무언가에 헌신해서 결과를 내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투자된 시간과 헌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결과에 초연할 수가 없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무서워서, 오래 헌신할수록 자유로운 선택이 멀어질까봐 중간에 그만둔다. 당연히 성공적인 삶은 멀어지고 스스로를 존중할수도 없다.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스스로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수퍼에고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에고를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이유다.
해결법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먼저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정말 잘나보여야 하는가? 있어보여야 하는가? 돈을 정말 그만큼이나 벌어야 하는가? 꼭 모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하는가? 그렇게 욕 먹는게 두려운가? 이 모든 욕구를 직면하고, 욕구충족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내려놓았다. 다음으로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 나의 비겁함, 나약함, 보잘것없음, 병신같음을 모두 인정한다. 그럼에도 할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할뿐임을 스스로 다짐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쓸데없는 욕심은 다 버렸으니 남는 바램들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하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나를 누군가 비판해도 아무 상관 없다. 누가 나를 판단해도 괜찮다. 내가 내 편이니까. 비난도 판단도 그 사람의 자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럴수 있지~' 하고 내 길을 가는 것 뿐이다. 한번뿐인 인생을 스스로의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나의 길.
장황한 자기 고백을 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모두에게 박수를 받을 수 없다. 모두가 나를 사랑해 줄 수 없다. 모두가 인정해주는 삶을 살 수 없다. 눈치는 적당히 보고 미움받을 용기를 내자. 나 스스로가 나를 미워하지만 말자.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할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