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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문제는 그 만족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개인의 현실인식이 개인적인 망상에 불과하더라도 불만족은 고통스럽다. 고통을 피해 본인이 인식하는 현실과 기대의 차이만큼 욕망한다. 현실이 기대만큼 좋아지기를 바란다. 이 기대는 다시 불안을 낳는다. 욕구가,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그 기대를 채워 현실을 바꾸지 못하면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일까봐, 또 다른 사람에게 낮은 평가를 받을까봐 불안해한다.
화살을 쏜다고 해보자. 100미터 앞에 과녁이 있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활을 쏘는데 과녁에 맞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거리와 바람, 힘을 가늠하여 활을 당기고 놓는다. 놓는 그 순간 화살은 말 그대로 나의 손을 떠났다. 이제 과녁에 가 맞을지, 땅에 떨어질지는 나의 애타는 바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갑자기 돌풍이 불 수도 있고, 동물이 지나가다가 과녁을 움직일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활을 잘못된 방향과 힘으로 당겨서 과녁에 맞지 않았겠지만, 화살을 수 만번 쏘고 경험이 충분히 쌓여도 결과에는 항상 변수가 있다. 활시위를 당기는 건 나의 책임이지만 과녁에 맞고 안맞고는 나의 소관이 아니다.
결과에 대해 불안하다면, 혹은 아무 이유없이 불안하다면 잘못된 기대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기대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활을 쏘는 것이지 과녁에 가 맞는 것이 아니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을 기대하면 기대할수록 불안만 늘어난다.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란다면 누구나 정신병자라고 할 것이다. 활을 잡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과녁을 척척 맞히기를 바란다면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인생을, 그것도 아주 편협한 개인의 경험이며 누구나 1회차인 인생을 이러쿵 저러쿵 맞네 틀리네 하는 건 어떠한가? 이만큼 돈을 벌어야 잘 사는 것이고, 이만큼 먹어야 잘 먹는 것이고, 이만큼 해야 잘 하는 것이고... 누가 정한 기준이고 기대인가? 이런 기대 때문에 불안하고 괴로워 하는건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아닌가?
망상에 불과한, 편견에 불과한 타인의 기준 혹은 나 스스로 만들어낸 기대와 욕망 때문에 불안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결과들을 내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고통스럽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을 한다. 최선을 다한다 해도 처음 하는 일이라면 어쩔수 없이 실패도, 시행착오도 경험할 것이다. 그 작은 실패들이 모여 '내가 할 수 있는 일' 을 점차 세련되게, 효율적이게, 또 즐겁게 하길 바란다. 활이 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주워서 쏜다. 과정을 즐기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나 다만 기뻐한다. 결과는 좋아도 나빠도 그만이다. 내가 과정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기대이며, 가장 좋은 기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