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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의 뿌리
    카테고리 없음 2022. 7. 26. 18:04

    첫 개원은 양수 개원으로 많은 것이 갖춰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3주 만에 양수 개원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것도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비용도 두배 이상 들었다. 인천의 B급지에서 서울의 A급지로 옮기니 임대료도 두배는 아니지만 50% 이상 높아졌다. 양수 개원에서 가장 큰 장점은 기존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꺼려하는 법이다. 특히 내 몸을 맡기는 의료분야에 있어서는. 원장이 바뀌더라도 많은 분들이 익숙한 한의원이므로 지속적으로 내원했고, 추가 광고로 만들어낸 초진환자와 시너지를 내며 한의원은 아주 바쁘게 잘 돌아갔다.

     

    첫 개원이 쉽게 잘 풀렸던 것 때문에. 또 하루 수만명이 지나가는 길목에 개원했기 때문에. 인테리어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언제 오픈하는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막연하고 나이브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쓸데없는 걱정까지 했다. 너무 사람이 많이 오면 어떡하지? 줄을 서시오~~ 우리 한의원은 열명까지만 진료 가능하오~~~

     

    첫 한 주가 지나면서 아주 당황스럽게도 (사실 당연하게도) 하루 두세명, 많아야 다섯명정도 진료를 보았다. 한 명 한 명 꼼꼼히 진료해도 시간이 텅텅 남는 상황. 첫 주는 그나마 미진한 서류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둘째 주는 정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재진율은 둘째치고 초진이 하루 한두 명뿐인 상황. 초진이 최소 3명은 되어야 좋은 자리인데.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무엇이 그렇게 불안할까? 개원이 실패하는게 두렵다. 개원 실패가 왜 두려운가? 개원에 실패하면 돈을 벌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면 무가치한 인간이 된다. 무가치한 인간이 되는 게 두렵다.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까 봐 무섭다. 무가치한 인간, 실패한 인간으로 비웃음을 사는 게 두렵다. 나는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성공으로. 돈으로. 

     

    이렇게 적고 보면 스스로 딱한 마음이 든다.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지 못하면, 돈이라는 가치 하나만으로 이렇게 불안해할까. 절대적으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30대 중반임에도 어머니의 재테크 조언을 충실히 따르고 또 운이 겹친 결과 불안할 필요 없는 자산이 있다. 돈이 없어서, 당장 돈이 필요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못 버는 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나는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실패한 나 자신까지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사실 실패랄 것도 없다. 이제 개원 3주차. 진료일로는 만 14일 지났다. 최소 3개월, 넉넉히 6개월은 지나야 개원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실패라고 느끼는 이유는 나의 조급함이자 헛된 기대이다. 6개월이 지나 실패가 확정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테다. 어떤 조건에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겠다. 실패한 나, 초라한 나, 잘나지 않은 나를 사랑하고 응원한다. 불안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삶은 지긋지긋하다. 아직 실패가 확정되기까지는 한참 남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 양심에 따라 하자. 그리고 결과를 받아들이자. 불안에 따라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얼마 못가 넘어져 쉬어야 한다. 불안을 직시하고 잘 이용해보자. 불안에 끌려가지 말고.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뿌리는 나의 하찮은 인정욕구잖아. 있어보이고 싶은거잖아. 그런건 껍데기일 뿐 너무나 공허했었다. 아무 쓸데없는 자아의 욕심에 끌려다니지 말자. 하루하루 한발한발 할 수 있는 일만 해보자. 오지 않은 실패를 미리 불안해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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