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20번 이상의 이사를 했다. 학창시절만 해도 개포동-양재동-대치동을 다섯번 정도 옮겨다녔다. 성인이 되고는 회기동, 이문동,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양구, 광교, 하남, 화곡동, 부천, 망원동, 잠실까지. 3달이하 짧게 살았던 일산과 봉천동 등등 많이도 돌아다녔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도 잦은 이사에 한몫하지만, 한곳에 몇달 이상 살면 지겨운 마음이 든다. 떠나고 싶어진다. 소위 정 이라는, 익숙함에서 오는 집이라는 편안함이 느껴지기보다는 일상의 권태와 답답함, 압박이 느껴진다. 절대 동네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간사한 마음이 그런 투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6월 중순 7개월간의 망원동 생활을 정리했다. 망원동은 아주 마음에 드는 동네였다. 어떤게 마음에 들었던걸까. 작은 가게들이 많다. 길도 작고 뭔가 사람들도 작아 보인다. 압박이 덜 느껴지는 동네다. 이 압박은 실재하는 건 아니다. 내 관념으로 투영한 나만의 아주 주관적인 착각이다. 20년을 살았던 강남에서는 어떤 메세지를 끊임없이 받는다. "성공해라" "너는 부족하다" "너는 충분하지 않다"
망원동에는 그런 압박, 강박이 없다. 아마 그런 느낌을 받을만큼 충분히 오래 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일상이 되고 살아지는 대로 살다 보면 망원동이라는 공간에도 나의 결핍과 두려움을 투영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망원동은 상당히 특별하다. 죽음보다 무서운 권태로부터의 도피처였고, 피할 길이 없는 막다른 낭떠러지였고, 그럼에도 새로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곳이다. 수년간 학대하던 몸을 일으켜 운동도 시작했다. 한강도 원없이 보고 자주 걸었다.
PT를 받았던 홍쌤은 아주 좋으신 분이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운동의 즐거움을 배웠다. 60회의 pt가 적은 횟수가 아니지만 한번도 아깝지 않았다. 오늘은 60회째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PT쌤과 악수를 하자 이제 정말로 망원동에서의 생활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이사를 했었지만 처음으로 애틋한 아쉬움이 들었다. 망원동이 정말 내게 맞는 곳이었을까? 도피처로서의 애틋함일까?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나 스스로의 변화 때문일까? 반년 뒤 삼전동을 떠날 때 이 일기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