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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악의 구분
    카테고리 없음 2022. 4. 17. 05:52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선악과 시비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악인은 낙인이 찍혀 그 악의 크기에 따라

    거대한 권력자 조차도 심판받는다. 

     

    시비의 구분은 좀 덜할지언정

    선악의 구분은 강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믿고 있었던 선한 것

    너무 믿어서 고통받았던 선한 것

     

     

    -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살면 너는 좋고 행복하다)

    어린 나는 어딘가에서 배운 이 말을 절대 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열심히 산다. 열심히 공부한다. 열심히 돈을 번다. 

    진인사대천명. 최선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열심히만 하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후회가 없을 것이며

    따라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고 행복하다는 믿음을 갖고 살았다. 

     

    이 믿음 하에 열심히 살지 않는 나 자산을 채찍질하고

    다른 이들을 열심히 사는 사람과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으로 재단한다.

    저 사람은 열심히 사는 사람.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대충 사네? 나쁜 사람. 

    저 사람은 너무 열심히 해서 나를 죄책감 들게 하고, 나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나쁘게 보이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멀리 하게 된다.  

     

    이런 판단을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눈 뒤에서 

    너는 열심히 살지 않는 인간이라는 경멸이 엿보이는데

    너는 나보다 열심히 살아서 좋겠다는 질투가 엿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눈을 좋아할 수 있을까?

     

    열심히 사는 게 좋다 라는 명제로

    충분히 열심이지 못한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까지 마음속으로 시기 질투 비난 경멸하며 점점 관계의 문을 닫았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까지도 고작 저 믿음 하나로 연락을 끊어버렸고

    나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선한 사람이 있는데

    나는 꼭 열심히 해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를 사랑하기가 어렵다.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은

    부정적인 현실을 만나 더 큰 죄책감을 낳고

    불만에 가득 찬 마음은 현실을 끌어내려 악한 곳으로 만든다.

    그래야 악한 나와 현실이 일치하니까. 

    나처럼 악한 사람은 악한 현실에 살아야 하니까. 

    점점 악의 수렁으로 빠진다. 나 스스로 끌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마음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세계를 모두 악한 곳으로 믿고

    나 스스로의 악함을 (열심히 살지 않음을) 받아들이면

    무한한 허무가 찾아온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악한 세상에서 악한 나는 살 이유가 없지 않나?

    죽음이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열심히 살지 않은 자는 죽어버려라!

    악인은 살 이유가 없다! 사형!

     

    여기까지 무의식이 뻗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단 하나의 선악 구분으로도 이렇게 될 수 있다.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선악의 믿음이 있는지

    그 믿음들에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

    지금은 무엇도 믿지 않으려고 한다.

    선악은 모두 배운 것이다.

    누군가가 알려 준 것이다. 뉴스 아래에 악플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믿는 베플 같은 것이다. 악플도 베플이 되곤 한다.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나를 죽이는 말은 나에게는 틀린 말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 믿음을 조금 고치기로 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너대로 그냥 괜찮다. 즐겁게 하자.”

     

    이렇게 믿은(믿기로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마음속에서 끓어올라 끅끅거리고 울게 된다. 

    선악의 구분이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던지 

    나에게 조그만 위로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그렇게 울고 나면 좀 편안해지고

    선악의 구분을 좀 내려놓을 수 있다. (다 내려놓기는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나도

    열심히 살지 않는 다른 사람도

    그냥 있는 그대로 편하게 봐준다.

    장난스럽게 유쾌하게

    오히려 강박적으로 할 때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니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하니 재밌게 할 수 있다. 뭔가 쌓아가는 기쁨이 있다.

     

    누가 쫓아오는 느낌으로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사는 삶과

    기대와 희망과 호기심으로 한발 한발 가보는 삶은

    겉보기에는 똑같이 앞으로 가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은 지옥과 천국의 차이가 있다. 

     

    예수는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 곧 죽음이라고 말했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선악을 내려놓는다.

    다 내려놓지 못하더라도 

    살짝 고쳐서 믿는다.

    나를 위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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