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망각과 왜곡
    카테고리 없음 2022. 4. 21. 08:12




    -
    기억은 컴퓨터 저장장치가 아니다. 사진 찍기가 아니다.
    강렬한 감정과 경험의 패턴이다. 기억의 목적 자체가 생존에 있다.
    당분을 먹으면 에너지가 생긴다. 생존한다.
    생존을 위해 단것을 찾는 패턴은 출생과 동시에 뇌에 각인되어 나온다.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패턴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아주 독특한 점은
    수많은 패턴들이 출생 후 양육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먹는다.
    양육자의 보살핌이 짧을수록 해당 종의 초기 자립도가 높다.
    인간이 좋아하는 우월망상에 따르면(ㅋㅋ) 인간 아기는 거미 새끼보다도 열등하다. 사슴보다도 열등하다.
    인간 아기는 양육자가 보살피지 않으면 자연에서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왜 이런 생존에 필요한 패턴이 백지에 가까운 상태로 태어나는가?
    그리고 이런 초기 세팅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모든 동물과 식물,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가?
    바로 그 패턴이 없음에 힘이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채울 수 있다.
    그때그때 사회에서 요구하는 패턴을 양육자가 가르쳐 주기 용이하다.

    인류 전체는 공통의 망상을 공유한다.
    “1초는 이만큼의 시간이다. 1미터는 이만큼의 길이다. 이건 손이고 이건 발이다.”
    “이건 돈이다. 의식주와 타인의 시간을 살 수 있다. 1달러는 1100원이다.”
    “이건 음식이다. 이건 독이다. 이건 약이다.”
    “서로 협동하고 죽이지 않는것이 좋다.”
    “믿음 소망 사랑이 중요하다. 그중 제일은 사랑이다.”
    “전쟁은 나쁘지만 내 나라 내 국민 내 가족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침략자를 죽여라”

    망상의 깊이만 다를 뿐, 믿음의 확고함만 다를 뿐이다. 모두 망상이다!
    인간이 만들어 내고 공유하는 환상이다. 실존하지 않는다.
    당장 현재 자신의 문화권만 벗어나도, 시대만 벗어나도 틀린 것이 된다.
    모두가 이렇게 믿기로 한 것이다. 이게 정답이라고 서로서로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효율이 있다. 이 믿음을 공유함으로써
    도량형이, 경제가, 과학이, 문화가, 건강이, 평화가 이뤄진다.
    문화가 망상에서 생겨난다. 놀라운 일이다.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인간이
    이 모든것을 배워 뇌에 패턴으로 새긴다. 생존을 위한 효율로서.



    -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인간의 뇌는 사진기가 아니다.
    사진기는 아주 비효율적이다. 정보의 취사선택과 방향성 없이 보이는 모두를 저장한다.
    뇌의 패턴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망상이 패턴으로 각인된다.
    이 패턴은 생존을 위해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기에 감정과 결부되어 있다.

    벌레를 보면 도망치거나 죽이는 즉각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벌레를 혐오하는 감정이 아주 유용하다. 벌레가 사랑스러워 보인다면 해당 행동이 즉각적일 수 없다.
    낭떠러지를 걸을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떨어지지 않아야 생존한다.
    높이에 대한 공포와 발밑이 무너지는 두려움이 즉각적인 행동을 만든다.

    벌레와 낭떠러지같은 경험은 뇌에 감정이 뒤섞인 패턴을 만들고 강화한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이렇게 대처해야지!”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여기에는 실제 일어난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효율이다. 감정이다. 경험에 대한 강렬한 감정.



    -
    마음의 효율성은 심지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조차도 상상하여 받아들인다.
    “선생님이 이게 우월하다고 했으니 우월하다.”
    “엄마가 이게 맞다고 했으니 맞다.”
    “여자친구가 이게 좋다고 했으니 좋다.”
    깊이만 다를 뿐 자기 삶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이 아니다. 망상을 공유한 것이다.

    망상의 공유는 쉽지 않다. 공부가 어려운 이유다.
    그 수많은 문화적 과학적 망상들을 공유하는 게 쉬울 리 없다.
    그 패턴을 익히려면 강한 감정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야기꾼은 감정을 담아 전달한다. 감동을 주고 두려움을 준다.
    종교인은 소리 높여 꾸짖고 천사같이 달랜다. 망상을 공유하기 위해.
    부모는 회초리를 들고 선물을 사준다. 망상을 공유하기 위해.
    사회의 모든 보상과 처벌 시스템은 망상을 공유하고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

    그 감정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자신만의 패턴으로 저장한다.
    뇌에 새로운 패턴을 만든다. 망상을 만든다.
    여기서 웃기는 점은 망상을 가르친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꼭 같은 망상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서 왜곡해서 믿는다.

    왜곡하든 하지 않든 공유된 망상을 믿기 시작한다.
    “이건 좋은거야. 이건 나쁜 거야. 이건 꼭 지켜야 해. 이게 정답이야.”
    모든 선악과 우열과 시비가 망상에서 나온다.
    자신의 감정이 뒤섞인 왜곡된 망상. 이것이 기억이다.

    이 기억, 패턴은 그 감정에 따라 계속 지니고 있기 위험한 것도 있다.
    높은 곳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삶을 크게 제한한다.
    자기비하, 열등감, 오만함 등의 태도를 만들어내는 패턴과 기억도 있다.
    기억하기에 너무 고통스럽거나 비효율적으로 큰 감정, 경험은 애써 잊어버린다.
    무의식 저편으로 보낸다.

    망각이 데이터 삭제처럼 깨끗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의식으로 보낸 감정과 경험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도 모르는 이유로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은 무의식 저편에서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적당한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상처를 덮어 두기만 해서 곪아 썩듯이 점점 더 썩어가기만 하는 것 같다.



    -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마음의 갑옷들.
    그 꼬리표를 살펴보면 언제 왜 이런 갑옷을 입었고 무슨 상황에서 만들었는지가 너무 희미하다.
    두려움으로, 공포로, 결핍으로 받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만든 건 알겠는데
    어떤 일이 있어서 어떤 감정으로 이런 무거운 마음의 짐을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상처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써 잊은 것이리라.
    이제 이 갑옷만 입으면 아프지 않을 테니 아픈 기억은 잊어버린 것이다.
    비겁하다! 상처를 직면하기는 커녕 피하고 잊어버리려고!
    동시에 너무나 불쌍하다. 상처를 어찌할 줄 모르고 갑옷을 만들던 나.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잊었던 감정들을 떠올려 본다.
    수십 년이 지나 삶을 더 경험했으니
    겨우 이거였어? 하는 감정도 있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감정도 있다.
    하나 하나 꺼내기 힘들어도 들어가 본다.

    자기 합리화와 남 탓, 자아 보호를 위해 분열되고 왜곡된 기억의 바다.
    망각과 왜곡의 바다인 나의 무의식을
    사랑으로 비춰 헤집고 있다.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상처가 아문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