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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31일까지 2년 1개월간의 개원을 마치고
(정확히는 2년 1개월 15일이다. 나는 하루하루 감옥에 있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15일도 빼먹는 것이 못내 억울하다.)
11월부터 지금까지 만 6개월간 쉬는 중이다.
잘 되던 한의원을 양도할 때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역시 한의사다. 역시 자영업자다. 자기 맘대로 쉬고 좋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2년 만에 쉬냐? 고생했다.
더 좋은데 개원하려고 그러나보다. 대단하다.
잘되는 것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텐데. 결단력이 있다.
미안하지만 모두 틀렸다.
내가 거짓 핑계를 대서 다들 오해를 했나 보다.
나는 온 세상 사람들을 혐오하고 무서워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간조들과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 지옥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는커녕 존중도 못하고 폄하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초라한 나를 발견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환자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면
손발에 땀이 나고 어깨가 굳고 입으로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럴싸해 보이는 말과 행동을 연습해서 로봇처럼 반복했다.
있어 보이는 한의사, 있어보이는 원장 로봇.
돈을 얼마를 벌든 누가 인정해주는 직업이든 다 필요 없었다.
개원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부터 그만두고 싶어 안달이 났다.
코로나 핑계를 대고, 건강 핑계를 대고, 자리 핑계를 댔다.
나는 더 좋은 자리에 개원할거라고. 건강을 챙기고 다시 개원할거라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개원할거라고. 사주에 옮기는 수가 있다고.
오만 핑계를 대고 양도를 했고 한의원이라는 현실에서 도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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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유튜브와 영화, 만화책만 봤다.
유튜브는 거의 하루 6시간씩 봤다. 아이패드로 만화와 게임도 자주 했다.
(게임은 그나마 금방 질려서 다행이었다. 게임에 빠졌으면 아직도 게임 중일 듯.)
건강은 진짜 나빠져 있었기 때문에 PT를 끊고 강박적으로 운동을 했다.
못 보던 친구를 만나고 나름의 로망이었던 한강뷰 빌라로 이사도 하고
자극을 찾아 새로운 연애도 했다. 현실도피의 연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만화 베르세르크의 명대사처럼 낙원은커녕 더 심한 지옥이었다.
한 달도 안 되어 모든 것이 지루해졌고 뭔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 지경에서도 마음은 어찌나 스스로를 보호하는지!
남 탓과 자기 합리화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된다.
스스로 목을 조르는 줄도 모르고 세상을 탓한다.
잘못된 가치관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발버둥을 치고 열심히 살고 열심히 쉬었는데 행복하지 않은 건
세상 자체가, 삶 자체가 잘못인 게 아닐까?
인생은 고해라더니 정말 고통의 바다인가?
그럼 뭐하러 살지? 이렇게 긴 고통과 찰나의 행복만 반복한다면?
1년마다 개원과 휴식을 반복해야 하나? 이사를 다녀야 하나?
이제 어디로 더 도망가야 하나? 죽음이 혹시 영원한 휴식인 건 아닐까?
한강물을 몇 달 보고 살아서 그럴 수도 있다. (진짜 1% 정도 영향 있다고 생각함)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게 아니라
너무 허무해서 죽음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실행력이 강해야 한다고 채찍질받으며 살아온 나의 마음은
죽음까지도 빨리빨리 하려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하겠지.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보다 먼저 가면 안 되겠지.
그럼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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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히 나의 도피와 가면을 짚어냈고
나를 새로운 고통에 빠뜨렸다.
현실과 나를 직면하는 고통!
존재의 뿌리가 흔들리는, 지난 삶을 버리라는 요구!
나는 상담 5회 만에 또 도망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철학책을 들여다봤다.
삶의 이유를 찾으려고. 엄마가 슬퍼할까 봐 사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던, 쓸데없어 보이던 철학들이
삶의 이유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왜 사는지에 대한, 존재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학적으로 쓴 원문은 관심 없었다. 그 내용이 중요했다.
잘 정리된 유튜브와 개론서를 여럿 읽었다.
의미있는 삶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
죽음과 삶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위로가 되었다. 나만 개고생하고 사는게 아니구나.
사람은 왜 살까 에 대한 고민을 초등학생도 하고 사춘기 소년도 하고 직장인도 한다.
하지만 빠르게 쉬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다.
돈 많이 벌려고 산다.
성공하려고 산다.
자식 때문에 산다.
맛있는 것 먹으려고 산다.
행복하려고 산다. (행복이 뭔지는 아나?)
빠른 결론, 누가 알려준 결론으로 얼른 고민을 마무리짓고
얼른 현실과 자아를 대충 맞춰서 타협하고 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35년만에 나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야
그동안 목표도 방향도 없이
문득문득 차오르는 욕구와
그 문제해결로만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깊이 생각해서 삶을 제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지는 대로 얕게 얕게 반응만 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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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제와 보잘것없어 보이는) 욕망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심리상담을 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죽음 앞에서 삶을 고민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휴식이라고 믿으면서 유튜브와 게임으로 도피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번씩 솟아오르는 욕구만 채우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삶을 돌아보고
지금의 마음을 살피고
앞으로를 설레며 기대한다.
후회도 아닌, 강박도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현재를 온전히 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정리 중이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마음의 하수구를 뒤지는 일이 결코 즐겁지는 않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 마음에 충실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즐거움과 기대로 준비하는 것 또한
휴식이라는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마음의 휴식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모두에게 감사하다.
이제 진짜 쉬고 있다.